| [한국사 바로보기] 사육신과 연좌제 적용 | ||
| [경향신문 2004-10-06 18:06] | ||
이 사실이 들통나 연루자들이 줄줄이 잡혀들었다. 연루자들은 역적의 죄명을 쓰고 살점이 뜯겨지고 사지가 찢어지는 고문을 받았다. 그들 속에서도 가장 강력하게 저항한 인사는 성삼문과 박팽년이었다. 성삼문은 집현전 학사 출신으로 명망이 매우 높았으며, 박팽년은 세종과 사돈 사이였으니 박팽년의 아들은 수양대군과 외사촌 사이였다.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도 가담했고 박팽년의 아버지와 아들 영풍군도 연루됐다. 박팽년은 심한 고문으로 옥중에서 죽었으며, 성삼문은 저잣거리에서 사형을 당했다. 나머지 사람들도 사형을 당하거나 유배를 갔으며 종들도 불고지죄에 얽혀 죽었다.
사형 당한 자의 재산은 숟가락 하나까지 몰수당했으며 죽음을 면한 가족들은 종의 신세가 되었다.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도 사약을 받은 끝에 목매 자살했다. 단종의 장인인 송현수도 죽었다.
영월 유폐 시절 단종은 아내 송씨를 무척 그리워했다. 변절을 한 신숙주가 왕비 송씨를 자기 종으로 내려달라고 간청했다는 말이 떠돌았다. 사실 여부를 덮어두고라도 아마 송씨를 종으로 들여 보호하려고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송씨의 경우 아버지 송현수가 역적으로 죽었으니 역적의 연좌죄에 해당할 것이다. 아무튼 송씨는 용케 죽음을 면하고 남의 집 종으로 있다가 만년에 동대문 밖에 있는 정업원에서 비구니 차림을 하고 살았다 한다.
박팽년 집안은 아버지와 아우 넷, 외아들이 모두 죽임을 당했고 재산은 깡그리 몰수됐다. 아내 이씨는 당시 임신 중이었다. 이씨는 사건 당시 종이 되었다가 풀려난 뒤 대구에 있는 친정에서 살았다. 조정은 아들을 낳으면 죽이라고 지시했다. 마침 이씨의 종도 임신 중이어서 두 여인은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았다. 이씨는 아들, 종은 딸을 낳았다. 두 여인은 남몰래 아이를 바꾸어 길렀다. 그리하여 사육신 가운데 오직 박팽년만이 후사를 두었다. 또 하나의 일화. 정분은 우의정에 오른 명신이었다. 관아의 종이 되었던 그는 마침내 약사발을 받고 죽임을 당했다. 그런데 그의 종이 정분의 어린 아들을 거두어 종의 신분으로 키웠다 한다. 뒤에 정분이 복권되자 종으로 위장했던 후손이 나타났다고 한다. 정분은 진주 정씨였다. 이 계유정난(癸酉靖難)은 역적을 다스린 하나의 기본사례로 꼽혔으며 무수한 연루자를 양산했던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