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은 1952년 개헌 때 대통령은 2차에 한해서 중임할 수 있다는 조항을 삭제하고 싶었지만 당시 분위기상 그것까지는 못했기 때문에 3대 국회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래서 5월 20일 총선에서 자유당에서는 ‘개헌에 찬성하는 조건’으로 공천을 주라는 명을 내렸다.

 

5.20 선거에서 경찰은 마을 반장회의 등에서 ‘야당 후보에게 투표하면 너희 마을을 공산당 소굴로 본다’며 협박을 일삼았다. 또한 야당 후보의 등록을 방해하는 수법을 자행하여 어떤 후보는 결국 등록도 못했으며, 경찰을 동원한 유세 방해 공작 등을 펼쳤다. 결국 자유당은  203개의 선거구에서 114석의 당선자를 냈다. 한편 5.20 총선에서 26세의 청년 김영삼이 최연소로 당선되었고, 김대중은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하였다.

 

대통령의 중임제한 폐지를 위한 개정에는 전체 203개 의석의 3분의 2인 136석이 필요하였으나 5.20 총선에서 자유당이 얻은 의석은 114석으로 22석이 모자랐다. 자유당은 막대한 정치자금과 부정선거 고발 위협 등을 동원하여 무소속 당선자 23명을 자유당에 입당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자유당은 1954년 9월 7일 초대 대통령의 중임제한 폐지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이승만은 개헌안을 제출하면서 ‘개헌에 반대하는 자는 국가시책에 대한 반역자로 간주한다. 정부에 반대하는 어떤 정당이나 단체라도 개헌안의 국민투표 조항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11월 20일 국회에 개헌안이 상정되었고, 11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에 들어갔으며, 개표 결과 203명 중 찬성은 135표가 나왔다. 개헌에 필요한 것은 203명 중 3분의 2인 135.3이었으므로 부결된 것이었으며, 국회 부의장도 부결을 선포하였다.

 

그런데 이틀 후인 월요일, 국회 부의장은 27일 개헌안의 부결을 선포한 것은 계산 착오이므로 이를 취소하고 가결되었다고 선포하였다. 그러면서 203의 3분의 2인 135.3을 사사오입하면 135가 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래서 이 개헌은 ‘사사오입 개헌’이라는 별명이 붙게 된 것이다.

 

자유당 원내총무는 135명이 203명의 3분의 2라는 담화를 발표하면서 수학계의 최고 권위자인 서울대의 모 교수도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이 진상은, 자유당이 개헌안의 부결로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서울대의 두 교수가 이승만을 은밀히 방문하여 이와 같은 수학적 논리를 조언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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