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사관련글
  2. 교육관련글
  3. 시사관련글
  4. 독도관련글
  5. 역사동영상
  6. 아버지답사
  7. 컴퓨터공부
  8. 업무자료
2010.03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동아일보:言官 역사를 지킨다] 2001년04월23일
공평무사의 표상 정인홍



그림 박순철 화백 율곡 이이의 ‘석담일기’에는 정인홍(1535―1623)에 관한 다음과 같은 일화가 실려있다.

“정인홍이 사헌부에 언관으로 있으면서 위엄을 갖고 일을 처리하고 규율을 바로 잡으니 모든 관료들이 두려워 떨며 삼갔으며 시중의 상인들까지도 나라에서 금하는 물건은 감히 밖에 내놓지 못했다. 정인홍이 부모님을 뵈러 고향으로 돌아가니 서울 성안의 방종한 자들이 모두 기뻐하기를, ‘이제야 어깨를 쉬겠다’ 하였다.”

사헌부 장령(정4품) 시절 언관으로서의 그의 명성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글이다.

정인홍은 16세기 중반 이퇴계과 쌍벽을 이루었던 대학자 남명 조식의 수제자이다. 스승 조식은 평생 관직에 나아가는 것을 거부하고 초야에 묻혀 살며 경(敬)과 의(義)를 중시하고 학문의 실천을 강조했던 인물이다.

조식은 당시 학자들이 관직에 나아가 제대로 개혁에 힘쓰지 않고 이기심성론(理氣心性論) 등 성리학의 이론적 측면에만 관심을 쏟는 데 대해 손으로 마당을 쓸고 청소하는 방법도 모르면서 입으로만 떠들어 명망을 도둑질해서 세상을 속인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정인홍도 이런 스승의 실천적인 학문과 강직한 성격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1558년 생원시에 합격했지만, 타락한 과거장을 보고 과거가 명예와 이익을 탐하는 것이라 해서 포기하고 학문에만 전념했던 정인홍이 관직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계기는 1573년(선조 6) 이지함, 최영경, 조목, 김천일과 함께 학문과 행실이 뛰어난 인물로 추천되어 6품직을 제수받고 경상도 황간현감으로 부임하면서였다. 여기서 그는 오로지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베풀어 당대 최고의 선정관(善政官)으로 뽑히기도 하였다.

1578년 영천군수로 재직할 때 청렴하고 백성을 우선하는 정치를 하다 상관과 마찰을 일으켜 사직하고 낙향했던 정인홍은 1580년 사헌부 장령에 임명된 언관 활동을 시작한다.

당시 조정이 동인과 서인으로 분열되어 가던 상황에서 공평무사와 강직함으로 명망이 높았던 정인홍은 많은 사람의 기대를 받으며 상경했다. 그가 상경하자 사람들이 그의 모습을 보려고 구름처럼 모여들 정도였다.

“정인홍은 비리를 탄핵하는 데 있어서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았고 금령(禁令)을 매우 엄격하게 펴서 지켜 일시에 기강이 자못 숙연함을 깨닫게 했다.”

‘선조실록’의 이 기록처럼 정인홍은 언관 활동을 시작하자마자 수령과 아전들의 가렴주구로 백성들의 생활이 피폐해졌음을 통렬히 비판했다. 또한 우성전이란 관리를 같은 동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탄핵했다.

탄핵 이유는 우성전이 부친상을 당했을 때 평소 좋아하던 기생이 머리를 풀고 상가를 출입했으며 지방관으로 나가서도 부모를 뵙는다는 핑계로 항상 서울에 있는 등 임무를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이경중 역시 같은 동인이었지만 이조전랑으로 오래 동안 있으면서 인사권을 남용한 이유를 들어 탄핵했으며, 사헌부에서 관직에 임명해줄 것을 요청한 대사헌 이식(李쑱)이 궁중에 뇌물을 바치는 등 불미한 행적이 드러나자 관리들에 대한 감찰 임무를 소홀히 했음을 들어 스스로 사직을 청하기도 했다.

나아가 당시 대표적인 외척인 심의겸을 탄핵해 파직시켰다. 심의겸은 명종 때 척신 이량을 실각시키고 사림(士林)이 정권을 잡는데 크게 기여했지만 동서분당의 빌미를 제공하는 등 구시대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따라서 정인홍은 그가 조정의 권력을 농락하고 여론을 분열시켜 나라를 혼미 속에 빠뜨렸다는 이유로 탄핵했던 것이다.

이 시기 언관으로서의 정인홍의 활동은, 같은 동료 언관들이 봉공진직(奉公盡職), 즉 공직을 받들고 직책을 다 한다고 평가할 정도로 붕당에 치우지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직무에 충실했다.

그가 언관 활동을 하면서 펼치는 주장은 선비들 대부분이 인정하는 공론(公論)으로 보는 경향이 강해 우성전과 이경중의 탄핵에 반발한 유성룡도 결국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심의겸과 같이 탄핵을 받은 정철도 “정인홍을 길에서 만나면 술을 한잔 같이 나누고 싶다”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그러나 붕당간의 갈등이 심해지면서 공평무사하고 강직하고 백성을 생각했던 그의 언론활동은 점점 자리를 잃어갈 수 밖에 없었으며 결국 그 자신이 당쟁의 희생자가 되어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정인홍(1535~1623)
△1573년(선조 6년) 주위의 추천으로 관직에 오름.
△1575년 황간현감이 됨
△1589년 정여립(鄭汝立)옥사를 계기로 동인이 남인 북인으로 나뉠 때 북인의 영수가 됨.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으로 나서 왜군을 격퇴.
△1607년 광해군이 즉위하자 언관의 수장인 대사헌에 기용됨.
△1618년 인목대비 유폐. 영의정에 기용됨.
△1623년 인조반정으로 참형당함.
분류 :
조선
조회 수 :
2694
등록일 :
2008.09.22
23:38:55 (*.102.173.76)
엮인글 :
http://ezhistory.org/zbxe/1647/59a/trackback
게시글 주소 :
http://ezhistory.org/zbxe/1647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조회 수
99 구한말 갑신정변의 영향 99
갑신정변의 영향 갑신정변의 실패는 조선 근대화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1.대중의 개화사상 불신요인 상승 2.개화파의 유혈극으로 국민들에게 국왕에대한 모독 그리고 청군에의해 도주당시 국왕을 내팽겨친 점등은 유교사상의근...  
98 구한말 갑신정변과 한반도중립화론 [1] image 95
(6)개화당의 유혈 혁명. 갑신정변 <개화만이 부국강병의 지름길.개화당의 형성> 개화사상은 북학파 실학을 계승하였습니다. 북학파는 조선조 청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여 부국강병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북학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97 일제시대 뉴스후에 나온 일제강제징용 임금지급 상황 109
[펌] 14살에 강제징용된 한국인 근로정신대에 65년만에 지급된 임금은 1,300원. 1,300원이 지급된 경위를 묻자 일본후생성은 아주 후하게 쳐준것이라는 답변. 그러나 같은 시기에 강제징용된 중국인 근로정신대에 65년만에 지급된 ...  
96 구한말 이토의 새 통치 구상: 한국의 일본화 [1] 292
'기다릴 줄 아는 맹수'...때가 오면 전광석화처럼 덮친다 이토 히로부미는 ‘온건’주의자이면서 ‘점진’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 이토는 책임 있는 자리에 앉으면서부터 늘 조심스럽게 정책을 다루어 나갔고 점진주의 노선을 ...  
95 일제시대 박 前 대통령 만주군 ‘혈서 지원’ 충격 [6] imagefile 279
말로만 전해지던 박정희 전대통령의 만주군 혈서지원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가 발굴 공개됐다. 민족문제연구소는 11월 4일, 최근 일본에서 입수한 혈서지원 기사가 실린 1939년 3월 31일자 『만주신문』 사본을 공개하고 박정...  
94 일제시대 "우리나란 안돼" - 일제정책중 하나 288
"우리나란 안돼"라는 자괴적 정신도 가장큰 일제정책중 하나였습니다.. 조선총독부 마지막 총재가 말했죠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민이 제 정신을 차리고 찬란한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  
93 구한말 이토 히로부미와 일본 근대국가 확립 그리고 조선 침략 420
이토 히로부미와 일본 근대국가 확립 그리고 조선 침략 10.26 하면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측근 김재규의 총에 목숨을 잃은 날로 기억을 하고 있지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은 100년 전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에...  
92 조선 하의도와 농민항쟁과 김대중 imagefile 489
김대중 대통령의 고향 하의도, 물 위에 뜬 연꽃 섬 [퍼온글 출처 - http://blog.daum.net-/stubbypencil/597271-4 ] 김대중 전 대통령이 8월 18일 오후 서거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25년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서 태어나 대한민국...  
91 조선 당파성론에 관한 글 609
당파성론이란, 조선시대의 문화가 수준이 낮고 고루하다는 전제하에, 조선이 발전하지 못한 이유는 자기들끼리 서로 늘 싸웠기 때문이고, 그 단적인 예가 士禍와 黨爭이며, 이는 좋지 않은 民族性의 所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일...  
90 구한말 휘문고 설립자 민영휘의 친일 행위 1174
민영휘 ( 閔泳徽, 1852∼1935 ) 가렴주구로 이룬 조선 최고의 재산가 1877년 문과 급제후 주일공사, 평안감사, 독판 내무부사 등 역임 탐관오리의 대표, 조선 최고의 재산가 민영휘의 원래 이름은 민영준(閔泳駿)이다. 1852년 경성...  
89 해방후 40년옥살이..기구한 안중근 조카며느리 [1] 2460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선 뒤 좌우 이념 대립이 극심했던 1950년대 냉전체제하에서 중국 공산당의 사상 탄압이 거셀수록 안 의사를 기리는 안 할머니의 저항은 더욱 거세졌다. 이적 행위 단속과 종교 탄압이 거세게 몰아치던 1958...  
88 해방후 새 역사교과서 `대한민국 정통성' 대폭 보강 [2] 2690
교과부 집필기준 확정…이념적 균형에 초점 `6.25 北 남침' 강조…2011년부터 사용 (서울=연합뉴스) 이윤영 기자 = 2011년부터 전국의 중ㆍ고교생들이 사용하게 될 새 역사 교과서에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이전보다 한층 강조...  
87 세계사 돌의 기도- 우르크의 왕 길가메쉬 2588
돌의 기도 조윤수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얼떨떨하다. 전북의 고창과 부안의 문화유적 답사라는 타임머신에 착 달라붙어 뒤로 달려서 약 2500년 전쯤 어느 마을을 떠돌다 갑자기 툭 떨어진 느낌이다. 언제나 가까이 있으면서도...  
86 해방후 59년만에 드러난 충남 공주의 한국전쟁 상흔 image 3105
보도연맹의 상처... 보도연맹의 희생자 사진 유해 235구 무릎 꿇린 채 손 뒤로 묶여 있어 유해는 금강을 따라 공주에서 대전으로 향하는 옛 국도변에서 오른쪽으로 100m 떨어진 야산(해발 80m) 3부 능선의 길이 14-19m, ...  
85 구한말 구한말연표 3138
병인박해(1866 초)-제너렬셔먼호(1866 7월)-병인양요(1866 10월~11월)-신미양요(1871)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의 대략적인 사건들을 나열해보겠습니다 1863년 고종즉위 흥성대원군정권 1865년 경복궁 중건 1866년 병인양요 제너...  
84 무열왕 김춘추의 생부, 왜 헷갈리나 image 2037
▲ 진평왕(조민기 분)의 품에 안겨 있는 김춘추. 드라마 <선덕여왕>. ⓒ MBC 김춘추 진평왕(조민기 분)이 차기 후계자로 점찍은 김용수(진지왕의 장남)가 공을 세우기 위해 참전했다가 사망한 이후, 용수의 부인인 천명공주(신...  
83 일제시대 이완용과 아들과 며느리 3480
이완용의 친아들은 당대 최고의 미녀로 손꼽히던 임걸귀와 결혼하지만 이완용과 며느리의 불륜속에서 아들은 아들은 호적에서 파버리고 자살을 선택합니다..  
82 해방후 조선일보 image 2851
3. 민족지 경쟁 4. 황군의 승전보를 기다리며 5. 아! 천황폐하!! 6. 제호 위에 빛나는 일장기 7. 아! 전두환 각하!! 8. 광주 학살자를 위한 조선일보의 노래 80년 광주보도 어제와 오늘 10. 5.18 ...  
81 구한말 서울로 가는 전봉준 / 안도현 imagemovie 2587
황토현 동학 축제에서  오늘도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촛불이 밝혀졌습니다. 광우병과 정부가 만들어낸 웃지 못 할 촌극 때문에 10대 청소년부터 시작하여 공무원 및 가정주부 그리고 어르신들까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습니...  
80 해방후 베트남 마을에 있는 한국군 증오비 image 2263
베트남 마을에 있는 한국군 '증오비' '하늘에 가 닿을 죄악 만대 기억할 것'... 출처 : 베트남 마을에 있는 한국군 '증오비' - 오마이뉴스 우리는 영원토록 뼛속 깊이 새길 것 베트남 꽝응아이(Quang Ngai)성에는 베트남 전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