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후의 혼란 속에서 1948년 5월 10일의 총선거로 구성된 국회(제헌국회)는 곧 헌법기초에 착수하였다. 그해 6월 3일 헌법기초위원 30명과 유진오(兪鎭午) 등 전문위원 10명으로 ‘헌법기초위원회’를 구성하여, 유진오의 안(案)을 원안(原案)으로 하고 권승렬(權承烈)의 안을 참고안으로 하여 초안을 작성하였다. 그 원안이나 참고안은 모두 국회를 양원제로 하고, 정부형태는 의원내각제로 한 것이었으나, 이승만(李承晩)의 주장으로 정부는 대통령책임제로, 국회는 단원제로 수정되었다. 이 안은 본회의에 상정되자 수정안이 많이 나왔으나, 8월 15일까지 국내외에 독립을 선포하여야 할 필요성에 쫓겨 7월 12일 국회에서 통과되었고, 7월 17일 서명 ·공포되어 그날로 발효되었다.

제헌헌법은 구(舊)일본제국헌법과 바이마르헌법을 모방한 것으로 자유권을 법률유보하에 보장하고, 생존권적 기본권도 상당히 보장하였다. 권력구조면에서도 3권분립을 규정하고, 단원제 국회를 두었으며, 대통령은 국회에서 선출하게 되어 있었다. 또 미국식 대통령제에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가미하였고, 지방자치를 규정하였으며, 경제조항에 통제경제의 면을 강력하게 나타내고 있었다.

이승만의 주장으로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여 1인 독재의 가능성이 내포되었던 제헌헌법은 처음부터 개정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에 있었다. 헌법이 제정된 후 무려 12차의 개헌안이 제출되었고, 9차례의 개헌을 단행하는 파란만장의 길을 걸어왔다.

〈제1차 개정〉 임시수도 부산에서 이승만의 재집권을 목적으로, 1951년 11월 정부는 국회의 양원제 및 대통령 ·부통령의 국민직선제를 내용으로 하는 개헌안을 제출하였으나 압도적으로 부결되었다. 이어서 야당이 1952년 4월 내각책임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제출하자, 정부는 먼저 부결된 직선제 ·양원제안을 약간 고쳐서 그 해 5월에 다시 개헌안을 제출함으로써 국회와 정부가 정면대결하는 ‘정치파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정부안과 야당안을 발췌하여 절충한 안이 공고(公告)와 독회(讀會)의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무장경관으로 겹겹이 포위된 비상계엄령하의 심야(深夜)의 국회에서 기립투표로 통과되고 말았다. 이 개헌을 발췌개헌(拔萃改憲)이라 하는데, 공고의 절차도 없었고 또 개헌안은 수정할 수 없는 데도 이를 수정하였으며 표결의 자유마저 없었으므로 그 합헌성(合憲性)에 의문이 있었다.

개정의 주요내용은 ① 국회의 양원제 ② 대통령 ·부통령 직선제 ③ 국회의 국무총리 인준과 국무원 불신임권 등이었다.

〈제2차 개정〉 서울 수복 후인 1954년 1월 정부는 개헌안을 제출하였다가 갑자기 철회하더니, 5 ·20 선거 후 이승만의 영구집권을 위한 개헌안을 제출하였다. 그 해 11월 27일 민의원(民議院)에서 표결에 붙인 결과 3분의 2 미달로 부결(否決)이 선포되었으나, 29일 4사5입(四捨五入)의 수학원리를 적용하여 여당인 자유당(自由黨) 의원의 가결로 번복하였다. 그러므로 이를 ‘4사5입 개헌’이라 하였는데, 국회의결에 있어서 4사5입의 원리를 도입한 것은 동서고금(東西古今)에 없었던 일이다.

주요내용은 ① 주권의 제한 및 영토변경에 대한 국민투표제, ② 국무총리제 및 국무위원의 연대책임제의 폐지, ③ 경제조항의 자유경제 체제로의 수정, ④ 초대 대통령의 중임제한의 철폐, ⑤ 특별법원에 대한 헌법적 자격 부여 등이었다.

〈제3차 개정〉 이승만의 영구집권의 길은 열렸으나, 극도에 이른 국민의 분노로 이승만의 4선을 낙관할 수 없게 되자, 자유당은 60년에 이른바 3 ·15부정선거를 자행하였다. 그 때문에 학생들과 국민이 저항권(抵抗權)을 행사하여 이승만 정권을 타도하려는 4 ·19혁명이 일어났고, 국회는 의원내각제를 골자로 하는 개정헌법안을 6월 15일에 통과시켰으며, 당일로 공포 ·시행되었다. 이 개정은 광범한 것으로서 개정의 형식을 취하였지만, 실질적으로는 헌법의 제정과 같은 것이었다. 참된 민주공화국을 건설하였고, 국민의 기본권을 철저히 보장하였으므로 ‘제2공화국 헌법’이라 한다.

개정의 주요 내용은 ① 법률유보조항을 삭제한 기본권 보장의 강화, ② 복수정당제도의 보장, ③ 의원내각제의 채택, ④ 헌법재판소의 설치, ⑤ 대법원장 ·대법관의 선거제도 채택, ⑥ 중앙선거위원회의 헌법기관화, ⑦ 경찰의 중립 규정, ⑧ 지방자치단체장의 선거제 채택 등이다. 이 헌법의 채택 후 처음으로 민의원과 참의원의 선거가 행하여지고 의원내각제가 실시되었다.

〈제4차 개정〉 자유당 정권에 협력 ·아부한 자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너무 관대하다는 불만을 품은 4월혁명 부상학생들이 민의원 의사당에 난입하여 ‘반민주행위자 처벌법’의 제정을 요구하였다. 이에 국회는 반민주행위자 처벌을 위한 소급입법(遡及立法)의 근거를 마련하는 부칙개헌을 60년 11월 29일에 확정하였다. 이 개정으로 반민주행위자들의 형사사건을 관장할 특별재판소 ·특별검찰부를 두게 되었으나, 소급입법으로 참정권과 재산권 등을 제한할 수 있게 한 것은 위헌이라는 논란이 일기도 하였다.

〈제5차 개정〉 1961년 5 ·16군사정변이 일어난 후 국가재건최고회의는 ‘국가재건비상조치법’을 제정하여 3권을 국가재건최고회의에 귀속시키고, 비상조치법의 개정방법으로 헌법을 개정할 수 있게 하였다. 이어서 1962년 11월 민정이양을 위한 헌법개정안이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의결된 후, 12월 17일 국민투표가 실시되어 헌법개정이 확정되었고, 12월 26일에 공포되었으며, 1963년 12월 16일에 그 효력이 발생하였다. 이 개정은 헌법에 규정된 개정방법에 따르지 않고 비상조치법 개정방법에 따라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하였고, 실질적으로는 새 헌법의 제정이면서, 형식적으로는 헌법의 전면개정이라는 점 등의 특색이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제3공화국 헌법의 제정이라 할 수 있다.

개정된 주요내용은 ① 엄격한 3권분립에 근거한 대통령제의 채택, ②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자연권 선언 및 기본권 보장의 강화, ③ 사법권의 자주성 강화, ④ 정당제도의 보장, ⑤ 경제질서를 보다 자유화, ⑥ 헌법개정에 있어 국민투표의 필수화, ⑦ 경제과학심의회의 ·국가안전보장회의의 설치, ⑧ 국회의 단원제와 정당국가화에 따른 국회활동의 약화 등을 들 수 있다.

〈제6차 개정〉 1968년 8월 7일 여당인 공화당(共和黨)이 대통령 박정희(朴正熙)의 3선을 가능하게 할 목적으로 개헌안을 제출하였다. 이를 둘러싸고 여야간에 극한적인 대립이 있었으나 9월 1일 국회를 통과하고, 10월 19일 국민투표를 거쳐 10월 21일 공포 ·시행되었다.

주요 개정내용은 ① 국회의원 정수의 증원, ② 국회의원의 각료 겸임, ③ 대통령의 연임을 3기까지로 연장한 점 등이다.

〈제7차 개정〉 1972년 10월 17일 대통령 박정희는 초헌법적인 국가긴급권(國家緊急權)을 발동하여 국회를 해산하고, 정치활동을 금하는 동시에 전국적인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여 헌정(憲政)을 일시 중단시켰다. 이윽고 헌법개정안을 공고하여 11월 21일 국민투표로써 확정하였으며, 대통령 취임일인 12월 27일에 공포 ·시행되었다. 이 헌법을 ‘유신헌법(維新憲法)’이라 하는데, 구헌법을 폐지하고 신헌법으로 대체한 점에 특색이 있다. 헌법 전반에 대한 변혁이므로 실질적으로 새 헌법의 제정이며, 제4공화국 헌법이라 부른다.

전문과 12장 126조 및 부칙으로 된 유신헌법의 주요내용은 ① 전문의 평화통일이념의 규정, ② 법률유보에 의한 기본권제한의 용이화, ③ 통일주체국민회의의 설치, ④ 대통령의 간접선거 ·권한 강화와 국가원수화, ⑤ 정당국가적 경향의 완화, ⑥ 국무총리 중심의 연대성 규정, ⑦ 국회 회기단축과 권한약화, ⑧ 헌법위원회 설치, ⑨ 대통령의 법관 임명권, ⑩ 새마을사업을 통한 지역간의 균형적 발전도모 등이다.

〈제8차 개정〉 1979년의 부마사태(釜馬事態)를 계기로 대통령 박정희가 암살된 10 ·26사태가 일어난 후 국민들의 민주화 요청에 따라 국회에 개헌특위가 구성되고, 정부에도 헌법개정심의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정부는 헌법개정심의위원회에서 만든 헌법개정안을 1980년 10월 22일의 국민투표를 거쳐 확정하고, 27일 공포 ·실시하였다. 권력집중적인 독재정치를 타파하고 권위주의헌법을 만들었으므로, 실질적으로는 제5공화국 헌법의 제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과 10장 131조 및 부칙으로 된 헌법의 주요내용은 ① 전문에서 제5공화국의 출범을 밝히고, ② 총강에서 전통문화 창달, 재외국민 보호, 국가의 정당보조금 지급, 국군의 사명조항을 신설하였으며, ③ 기본권의 개별유보조항을 없애고, 연좌제금지 ·환경권 ·행복추구권 ·적정임금권 등을 새로 추가하였으며, ④ 대통령의 권한을 유신헌법보다 약화하여 대통령은 선거인단이 선출하고, 7년 단임제로 하였으며, ⑤ 국회의 권한을 상대적으로 강화하여 비례대표의 근거조항을 신설하고, 국회의원의 임기를 4년으로 하였으며, ⑥ 대법원장에게 일반법관의 임명권을 부여하고, 대법원의 구성을 2원제로 할 수 있게 하였고, 행정 ·조세 ·노동 ·군사 등의 전담부(專擔部)를 설치할 수 있게 하였으며, ⑦ 독과점의 금지와 중소기업보호 ·소비자보호 규정들을 신설하였으며, ⑧ 부칙에서 과도입법기관인 국가보위입법회의를 규정하여 소급적으로 참정권을 제한하는 특별입법의 근거를 밝혔다.

〈제9차 개정〉 1987년 6 ·29선언에 의해 여당이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여 ·야 합의에 의하여 국회에서 의결된 헌법개정안은 1987년 10월 27일 국민투표를 거쳐 확정되고, 29일에 공포되어 1988년 2월 25일부터 시행하게 되었다. 대통령직선제, 의회의 복권 등을 통하여 권위주의적인 정부형태가 민주화되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제6공화국 헌법의 제정이라고 볼 수 있다.

현행 헌법은 ① 전문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4 ·19민주이념의 계승 및 조국의 민주개혁의 사명을 명시하고, ② 총강에서 재외국민에 대한 국가의 보호의무, 국군의 정치적 중립준수를 명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의 수립 ·추진규정을 신설하였으며, ③ 기본권에서는 구속적부심사청구권의 전면보장, 범죄피해자에 대한 국가구조제 등의 신설, 형사피의자의 권리확대, 허가 ·검열의 금지에 의한 표현의 자유확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확충하였고, ④ 국정감사권을 부활시켜 국회권한을 확대하고, 국회의 회기제한규정 삭제, 국회의 활성화, ⑤ 대통령직선제와 5년 단임제를 시행하고, 비상조치권 ·국회해산권을 폐지하여 대통령권한을 축소하였으며, ⑥ 대법관을 국회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여 실질적인 사법권의 독립을 명시하고, ⑦ 헌법재판소를 신설하여 위헌법률심판 ·탄핵심판 ·국가기관간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을 관장하게 하고, ⑧ 경제질서에 관하여 자유경제체제원리를 근간으로 적정한 소득분배, 지역경제의 균형발전, 중소기업과 농어민보호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의 복리를 증진,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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