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이면 떡을

 

이간(숙종 때 선비, 벼슬 기록은 없음)은 선친 기일을 맞아 생전에 몹시  좋아하던 물고기를 제상에 올리려고 맨손으로 고기를 잡으려고 했다. 잡힐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물고기를 좇아 삼십리나 떨어진 바라미(海底里:봉화부근의 마을 이름, 의성김씨의 세거지)까지 오게 되었지만 한마리도 잡지 못했다.

 

날이 저물었으니 그 마을에 사는 김참판의 집을 찾았다. 둘은 밤이 이슥토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정이 가까워오자 이간은 부랴부랴 떠나고자 하였다. 집에 가서 제사를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딱하게 여긴 김참판이 만류하였다.

 "제물을 마련할 테니 여기서 망제(望祭:먼곳에서 조상의 무덤이 있는 곳을 향해서 지내는 제사)를 올리도록 하게."

 

참판 부인이 서둘러서 제물을 마련하고 제상을 차린 후 이간을 찾으니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새벽녘이 되자 이간이 나타났다.

 "도포 없이 제사를 지낼 수 있나.집에 가서 갖고 오는 길일세."

제상 앞에 선 이간은 매우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까닭을 물으니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암만 바쁘더라도 편(떡)을 할 것이지. 그래 ……"

<김원길 지음 '안동의 해학'에서>

 

 여기서 이간과 김참판이 나눈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이간이 과거길에 올라 친구 꾐에 빠져 창덕궁을 부잣집으로 알고 담을 넘어 들어 갔다가 숙종이 쓰는 서실에서 춘추좌씨전을 읽고 있었는데 외출에서 돌아온 숙종과 조우한다. 그냥 이 큰 집의 주인 행세를 하는 숙종과 싯귀를 나누게 된다.

 

노초충성습(露草蟲聲濕: 이슬 머금은 풀엔 벌레 소리 젖어 있고 )

숙종이 운을 떼자 이간이 바로 받아

풍지조몽위(風枝鳥夢危: 바람부는 가지엔 새의 꿈이 위태롭다)

 

이어서 숙종이

일타서시안(一朶西施顔: 한송이 연꽃은 서시[춘추시대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에게 바친 절세미인]의 얼굴이요)

이를 받아 이간이

칠규비간심(七竅比干心: 일곱 구멍 연밥은 비간의 심장이라. 비간은 은나라 마지막 왕인 주왕의 삼촌으로 주왕의 음란함을 간하면서 3일동안 물러서지  않자 화가 난 주왕은 비간을 죽이고 나서 "내가 들으니 성인의 심장에는 일곱 구멍이 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보자."며 비간의 심장을 꺼내어 살펴보았다고 함)

 

뭐 이런 경험담이 오고 갔을지도 모른다. 여차여차하여 이간은 숙종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임금이 내린 정초지를 두 친구에게 내어주고 시제를 다른 종이에 썼지만  친구들이 핀잔을 주는 바람에 버리고 말았는데 버린 글을 정초지에 써낸 두 친구만이 참방된 것이다. 임금이 나중에 둘을 불러 자초지종을 듣고 이간에게 "그대는 벼슬아치에 합당치 않으니 평생 글이나 읽도록 하시오." 이 일로 이간을 춘추(春秋)라 부르게 되었는데 이게 와전되어 '천치'라고 했다.

 

이간과 같은 사람이라면 천치(바보)란 소리를 들어 마땅할 지도 모른다.그래도 조상을 깎듯이 모시고 사람의 도리를 다하려는 마음가짐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부담스럽지 않은 인물로 다가오는 것 같다.